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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다음은 북한?... 북한 핵 개발 70년의 궤적
- 기자, 한상미
- 기자, BBC 코리아
- 게재 시간
- 읽는 시간: 6 분
미국과 이란이 106일간의 전쟁을 끝내는 양해각서(MOU)에 서명하면서 북핵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양측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포기에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처리 방안은 60일 이내 후속 협상 과제로 남겨뒀다. 제재 완화와 핵 활동 제한을 맞바꾸는 협상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향후 북한 문제를 둘러싼 외교적 해법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린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 과거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2018)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나란히 걷는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게재했다. 이란 전쟁이 사실상 종료되면서 이제 그의 시선이 북미 대화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문제는 북한과 이란은 그 입장이나 여건 자체가 다르다는 점이다. 이란이 핵무기 보유 저지를 위한 협상의 대상이었다면 북한은 이미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마치고 스스로를 핵보유국이라 주장하고 있다.
또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최근 열린(6월 20~22일) 로동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도 '핵무력 강화' 원칙을 거듭 천명했다.
북한이 오늘날 협상 대상으로서 이란과 전혀 다른 위치에 서게 된 배경에는 70여 년에 걸친 핵 개발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그 뿌리는 6.25전쟁 직후인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냉전이 낳은 북한 핵
6.25전쟁 과정에서 북한은 미국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거론되자 핵을 체제 생존과 직결된 사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휴전 협정 이후 북한은 1955년 2월 소련과 첫 과학기술 협력 협정을 맺었다. 냉전이 격화하던 시기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소련의 '평화적 원자력 이용'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평화적 이용이 명분이었지만 냉전 체제에서 원자력 기술과 군사적 활용 가능성은 완전히 분리될 수 없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진무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BBC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충격으로 핵무기의 위력을 실감한 북한이 전쟁 이후 분단 고착 속에서 안보 위기를 실존적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 중소 분쟁으로 소련과 중국이 갈라서면서 더 이상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는 '자주'의 논리가 핵 개발의 동력이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1960년대 북한은 실제 영변을 중심으로 연구시설을 확충하며 자체 핵 연구 기반을 다져 나갔다. 1962년 '4대 군사노선'을 채택한 데 이어 1966년에 이르러서는 국가 예산에서 군사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30% 이상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이 시기에 축적된 인력과 기술이 훗날 북한 핵 프로그램의 토대가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여기서 북한이 가진 결정적인 지정학적 이점이 있다. 한국과 달리 북한은 황해도 일대에 전 세계 5위 수준의 우라늄 매장량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핵무기 개발의 첫 번째 조건인 원료 확보 문제를 북한은 처음부터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한 셈이었다.
김진무 전 연구위원은 "대한민국은 우라늄 매장량이 사실상 없어서 처음부터 핵무기 개발 자체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던 반면, 북한은 일단 우라늄이 있으니 기술적 기반만 갖추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기와 협상의 반복
북한 핵 개발이 국제사회의 의제로 떠오른 것은 1989년 프랑스 상업위성이 영변 핵시설을 포착하면서부터다. 이것이 바로 제1차 북핵 위기의 시작점이다. 이후 북한은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서도 핵 개발을 멈추지 않는 이른바 '양면전술'을 30년 넘게 반복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1980년대를 북한 핵 개발의 가장 큰 변곡점으로 꼽았다. 그는 "사회주의 체제 붕괴로 소련의 핵우산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과거 에너지와 병렬로 진행되던 핵 개발이 '무기로서의 핵'으로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고 진단했다.
1993년 북한의 NPT 탈퇴 선언으로 한반도는 제1차 북핵 위기의 정점을 맞았지만 이듬해 북미 제네바 합의로 봉합됐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김진무 전 연구위원은 "제네바 합의가 플루토늄 라인만 막았을 뿐, 북한이 우라늄 농축이라는 두 번째 경로를 몰래 가동하고 있었다는 점이 함정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2002년 고농축우라늄 (HEU) 프로그램 의혹이 불거지면서 합의는 사실상 파기됐다.
협상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멈추지 않았다.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인근에서 첫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수십 년 동안 추진해 온 핵 개발이 실제 핵무기 실험 단계에 진입한 순간이었다. 국제사회는 즉각 규탄에 나섰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제재를 채택했다.
이후 중국 중재로 6자회담이 시작되고 2007년 냉각탑 폭파까지 갔지만, 사찰·검증 단계에서 또다시 무너졌다.
김정일 시대, 핵실험 강행
북한의 첫 핵실험은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니었다. 2002년 HEU 프로그램 의혹, 2003년 NPT 탈퇴, 조지 부시 행정부의 '악의 축' 규정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북한 지도부의 위기의식을 높였고, 결국 핵실험이라는 선택으로 귀결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협상 카드가 아닌 체제 생존의 보증수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김동엽 교수는 2008년을 두 번째 중요한 변곡점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핵을 가진 나라'라는 정체성으로 바뀐 시점이라는 것. 그는 "6자 회담이 결국 사찰∙검증 단계에서 깨지고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까지 악화되는 과정, 그리고 G2라는 미중 관계의 새로운 구도가 등장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북한이 '핵을 끝까지 가져가겠다'고 결정한 때가 바로 그 시기"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데는 역사적 학습 효과도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03년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는 핵·화학무기 프로그램을 자진 포기했지만, 8년 뒤 서방의 개입으로 정권은 무너지고 카다피 본인은 목숨을 잃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역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의 침공을 받아 축출됐다.
북한 지도부는 이 두 사례를 "핵을 포기하면 체제가 끝난다"는 증거로 인식해왔다. 실제 지난 2018년 미국의 존 볼턴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 '리비아 모델'을 언급하자 북한이 즉각 강하게 반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핵 포기를 곧 체제 붕괴로 여기는 이러한 인식은 북한 지도부 내에서 협상의 마지노선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후에도 협상은 이어졌다. 하지만 북한은 2009년 두 번째 핵실험을 실시하며 핵 개발 노선을 이어갔다.
김정은 시대, 핵무력 완성
2011년 12월 김정은 위원장이 막 권력을 승계했을 당시만 해도 북한의 핵 능력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이후 10여 년 동안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2012년 헌법 개정을 통해 스스로를 '핵보유국'으로 명문화한 북한은 이듬해 세 번째 핵실험을 실시했고 2016년에는 두 차례 핵실험을 강행했다.
2017년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6차 핵실험을 실시한 데 이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4형과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둘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은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이 실현됐다"고 선언했다.
기술적으로 보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세 가지 축을 따라 고도화됐다. 핵물질 (플루토늄 및 고농축 우라늄)과 핵폭탄 장치, 그리고 운반 수단인 미사일이다. 이 세 가지는 김정일 시대에 기초가 갖춰졌고, 김정은 시대에 들어 고도화됐다.
김진무 전 연구위원은 "북한이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 핵폭탄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며 "영변 원자로와 영변·강선·구성의 우라늄 농축공장을 합산하면 최소 50개에서 10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렇듯 2017년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실험으로 한반도는 전쟁 위기가 고조됐고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압박' 기조 역시 강화됐다. '로켓맨'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때다.
그러던 중 2018년 상황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대화에 나서면서 그해 6월에는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역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하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나면서 협상은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졌다. 북한은 이후 핵 개발 노선을 더욱 분명히 했다. 지난 2022년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한 데 이어 2023년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 강화를 헌법에 명시하는 개헌까지 단행했다.
이란 다음은 북한일까
미국과 이란의 합의가 성사되더라도 북한에 같은 방식이 적용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은 "이란 문제가 끝나면 불법적으로 핵을 개발하는 나라는 북한뿐이기 때문에 트럼프의 시선이 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란 핵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대로 이란 문제를 해결하고 곧장 북한으로 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고 했다.
신 전 차관은 트럼프 앞에 놓인 선택지를 두 가지로 정리했다. 하나는 '이란처럼 군사적 압박을 포함한 대대적인 압력을 가해 비핵화를 요구하는 방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북한이 기존에 개발해 놓은 핵물질은 인정하되 미국을 겨냥한 ICBM 개발 중단과 핵 활동 동결, IAEA 사찰을 받는 조건으로 제재를 해제하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후자의 경우 "한국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진무 전 연구위원은 "핵 프로그램 자체의 수준만 봐도 이미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란이 우라늄 농축 순도를 60%까지 올렸고 이는 조만간 90%까지 올릴 수 있다는 의미이긴 하지만 핵폭탄 장치나 미사일 탑재 소형화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그는 "반면 북한은 이러한 요소를 다 갖췄다. 이란에 적용한 방식을 북한에 그대로 가져올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지정학적 차이도 뚜렷하다. 이란은 내륙국으로 미국과 서방에 우호적인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다. 또 인근에 직접 지원해 줄 특정 강대국도 없다. 군사적 압박과 제재에 상당히 취약한 구조라는 뜻이다. 반면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맞닿고 있다.
김 전 연구위원은 "북한이 무너지면 중국은 당장 한미 연합전력과 압록강에서 대치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이는 전쟁을 해서라도 막아야 할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지금 러시아가 북한 탄약과 병력을 받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지 않나. 이란을 군사적으로 압박했을 때와 북한을 압박했을 때 나올 수 있는 반응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고 그는 부연했다.
북미 대화 이뤄질까?
그렇다고 대화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북한은 올해 초 로동당 제9차 대회에서 '조건부 북미관계 개선' 의향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최근 김 위원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대화 재개 기대감을 키웠다.
집권 1기에 세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경험이 있는 트럼프인 만큼, 이재명 대통령도 그에게 한반도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여를 요청하며 외교적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완전한 비핵화보다는 핵 동결이나 군축, 위기 관리에 초점을 맞춘 접근이 현실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완전한 비핵화 일괄 타결보다는 현 단계에서 핵 개발을 중단하고 동결하는 현실론, 그리고 비핵화는 장기적 목표로 단계적으로 이행해 나가는 '동결 입구론'이 지금 한미 간 공감대가 형성된 접근"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도 중단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대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나쁜 상황은 아니라며 "남북미 모두 이 현실적 접근에 공감대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나 협상에 응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도 지난 6월 6일 담화를 통해 이를 재확인했다. 자신들의 핵보유국 지위는 절대불퇴의 한계선이라고 밝힌 것. 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7년 만의 방북을 하루 앞두고 나온 발언으로, 북중 정상회담에서도 '비핵화'는 의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됐다.
김현욱 세종연구소 소장은 "김정은 입장에서는 지금 트럼프를 꼭 만나서 뭘 해야 할 동인이 별로 없다"며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내다봤다. 이어 "북러·북중 관계를 통해 사실상 필요한 제재를 많이 풀어놨다"면서 "제2의 하노이가 될 바에는 안 만나겠다는 것이 김정은의 현재 입장"이라고 진단했다. 만약 협상이 성사되더라도 "트럼프가 북한 비핵화에 대한 명시적 언급 없이 '전략적 모호성'으로 가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도 덧붙였다.
완전한 비핵화, 핵 동결, 군축 등 그 어느 것도 쉽지 않아 보이는 상황이다. 특히 북미 회담이 개최되려면 북한이 보유한 핵물질의 양, 핵시설 위치, 핵무기 수량 등이 먼저 공개되어야 하는데, 북한이 과연 수십 년간 감춰온 정보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이 과거 2.13 합의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6·25전쟁 직후 시작된 북한의 핵 개발은 70여 년에 걸쳐 이어져 왔다. 협상에 나서는 것과 핵을 내려놓는 것은 북한에게 애초에 다른 문제다. 수십 년의 실패가 쌓인 협상 테이블 앞에서 과연 이번만큼은 다른 답이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