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공항 CCTV로 완성된 김정남 암살 소재 다큐멘터리 영화

    • 기자, 빈센트 다우드
    • 기자, BBC 예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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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영화감독 라이언 화이트는 김정남 암살사건을 처음 접했다. 당시 그는 이 사건이 놀랍다고 느꼈지만, 영화로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몇 달 후 그는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봤고, 전에는 몰랐던 정보기관과 국제 정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10년 이상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온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동성결혼 합법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더 케이스 어겐스트 8(The Case Against 8)’의 감독이기도 하다.

그는 "2017년 김정남 사건을 보고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북한 지도자의 이복형제가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죽었어요. 그런데 너무 이상하잖아요. 그에게 치명적인 신경작용제 공격을 한 두 여성은 리얼리티 TV쇼 장난인 줄 알고 그랬대요."

당시 45세였던 김정남은 지난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동남아 여성 2명에게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 공격을 받고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숨졌다.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28)과 인도네시아의 시티 아이샤(25)는 김정남을 암살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2019년 아이샤와 흐엉 모두 석방되면서 김정남 암살사건은 사실상 미제 사건으로 마무리됐다. 살해된 사람은 있지만 법정에서 범인을 가려내지 못했다.

김정남은 김정은 위원장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의 가족은 북한을 떠나 마카오에서 살았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김정남이 피살 전 카메라에 앞에서 말하는 영상도 등장한다.

화이트는 더그 복 클락 기자의 연락을 받고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더그 클락이 GQ에 나갈 탐사 취재 기사를 준비 중이라면서 기사에 다 못 담을 이야기가 있다고 얘기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이 두 여성이 암살 혐의로 재판을 받을 것이라고 얘기했죠. 살인 혐의가 그대로 적용된다면, 사형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요. 그런데 이 두 여성 모두 리얼리티 TV 쇼를 위한 몰래카메라인 줄 알았다고 무죄를 주장했어요."

화이트는 이 이야기로 무죄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더 케이스 어겐스트 8’ 제작 이후 다시는 재판을 다루는 영화를 만들지 않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600시간에 달하는 촬영분을 가지고 편집을 하기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그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 재판은 다큐멘터리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3막 구조에 딱 맞아떨어진다는 걸 느꼈죠. 몇 주 후에 전 말레이시아 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CCTV 영상은 이 범죄 다큐멘터리 영화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화이트는 2017년 2월 13일 찍힌 공항 CCTV 영상을 확보할 수 없었다면 이번 영화는 만들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이 영상을 확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말레이시아 당국과 경찰은 1년 넘게 관련 자료 공개를 거부했다.

화이트는 정확히 어떻게 CCTV 영상을 입수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김정남이 공격당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과 편집되거나 조작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까?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수천 시간 분량의 영상을 확인했습니다. 공항 내 카메라가 없는 곳이 없었어요. 물론 누락된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영상 대부분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DVD를 돌려보기 위해 컴퓨터도 새로 사야 했고, 영상을 다 확인하는 데만 3개월이 넘게 걸렸어요."

두 피고인은 서로 다른 나라 출신에 매우 다른 인생 경험을 가지고 있다. 화이트는 가족들의 촬영 협조 동의를 받고 이들을 만나기 위해 떠났다.

"그들은 제가 짧은 인터뷰를 하러 온 기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든다고는 생각을 안 한 거죠. 처음에는 이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영화를 풀어나갑니다. 하지만 몇 달에 걸쳐 계속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지금까지 이들이 했던 말의 앞뒤가 맞아떨어지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요. 이 부분을 정말 서서히 깨달았던 것 같아요."

영화 촬영 기간 대부분 두 여성은 감옥에 있었다. 아이샤는 2019년 3월 공소 취소로 석방됐고 흐엉 씨도 같은 해 석방됐다. 화이트가 영화를 촬영한 2년 반가량의 시간동안 그는 북한 정부와 공식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직접 연락을 한 기억은 없다.

"편집증일지 모르지만, 이런 프로젝트를 할 때면 여러 의심이 들죠. 아는 사람한테 이메일을 보내면서도, 그 사람이 정말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맞을까 하는 의심이요. 작년에 영화 시사회를 하고 흐엉과 페이스북으로 얘기를 잠깐 했어요. 저한테 막 화를 내는 데 흐엉 같지 않더라고요. 쓰는 영어도 평소 같지 않았고요."

화이트는 다른 앱으로 흐엉에게 연락했고, 누군가가 흐엉인 척하고 완벽하게 페이스북 프로필을 만들어 그에게 접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게 북한 정부의 소행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물론 전 그걸 확인할 수 없죠. 그런데 이런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어요.”

북한이 그의 영화를 신경 쓰지는 않을까? 미국인이 만든 영화에 북한이 어떻게 묘사되는지 궁금해하지 않을까?

화이트는 북한에 대해 무언가를 단정 짓기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북한은 굉장히 공공연한 장소에서 김정남을 살인했다"며 "이런 관심이 도움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항은 CCTV 천지였어요. 시시각각 모든 것이 촬영되고 있었습니다. 김정남은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해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암살을 이렇게 특별한 방법으로 감행했을까요? 그 이유가 뭘까요?"

화이트는 김정은과 그의 주변 인물들이 이번 암살 사건을 전 세계에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 지도자의 심기를 건드리거나 방해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를 보여준 거죠. 가족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지난 12월 미국에서 개봉한 '암살자들(Assassins)'은 다큐멘터리 배급사 도그우프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 스트리밍 서비를 통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