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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정의해주는 '슈퍼 시계'의 세계
우리는 어떻게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복잡한 답을 리처드 피셔가 들려준다. 런던의 한 실험. 눈 앞에 있는 경고 표지판엔 "메이저(양자발진기 중에서 주로 마이크로파 영역의 전자기파를 발진·증폭하는 장치)를 만지지 마시오"라고 쓰여 있었다.
경고판 너머로는 강철로 된 보호 상자에 쌓여 바퀴까지 달린 키가 큰 검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이 상자에는 이런 경고판이 붙을 만했다. 위험한 장치는 아니었지만, 내가 함부로 손대면, 장치가 시간을 파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런던 남서부 국립물리연구소에 소장된 이 장치는 지금 이 순간의 정확한 시간을 전 세계가 똑같이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들 중 하나다. 이곳의 장치는 그중 수소 메이저라고 불리는 원자 시계였다.
이런 장치는 전 세계에 400여 개가 있고, 현재 시간을 나노초(10억분의 1초) 단위까지 정의해준다. 이 시계(관련 기술과 사용방법, 운용 인력 등)가 없다면, 현대 세계는 혼돈에 빠질 터. 시간은 위성 네비게이션에서 휴대전화까지 많은 산업과 기술에서 "보이지 않는 가동 프로그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류는 어떻게 이런 시간 공유 시스템을 만들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 정확도는 어떻게 유지되며, 미래에는 어떻게 진화할까? 이를 파고들다 보면, 인간이 만든 시간이라는 구조물의 진정한 의미가 보인다.
옛날엔 세상 사람들이 하나의 시간 체계를 쓰지 않았다. 지역별로 인접한 사람들이 해당 지역의 시계로 시간을 정의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곳은 정오였지만, 좀 떨어진 곳에서는 12시15분일 수도 있었다.
미국도 1800년대까지 도시와 지역 철도 관리자들이 정의한 수백 개의 시간 표준을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엔 지구 전역은 물론 한 국가의 모든 시계를 똑같이 맞출 방법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오랫동안 동일한 시간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필요할 때 일했고, 멀리 여행하지 않았으며, 근처에 있는 해시계나 교회 종소리가 알려주는 시간으로도 생활에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산업 시대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어떤 경우엔 정확한 시간 공유가 없어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1800년대 중반 뉴잉글랜드에서 조종사가 사용하던 시계가 시간을 잘못 보여주는 바람에 열차가 정면 충돌했고, 1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산업화 이후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선 정확한 시간을 잘 공유하는 게 필요했다. 정확한 시간을 공유해야 같은 시간에 공장이 돌아가고 같은 시간에 열차가 출발하며 은행 거래 시간이 동일하게 기록됐던 것이다.
역사가 루이스 뭄포드가 산업혁명의 가장 중요한 기계는 시계라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증기기관은 동력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사람들의 활동을 동일하게 맞출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한동안 시간 공유의 매개체는 런던의 그리니치였다. 그곳에 보관된 기계식 시계는 그리니치 표준시(GMT)라는 "진짜" 시간을 보여줬다. 1833년에는 그리니치 천문대에 있는 돛대에 공이 하나 생겼다. 이 공은 매일 오후 1시에 돛대 상단에서 아래로 떨어졌고, 런던의 상점과 공장 및 은행 등은 이를 보고 시간을 맞췄다.
몇 년 후, GMT는 전보를 통해 전국에 "철도 시간"으로 배포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영국의 철도망도 정돈됐다. 1880년대에는 그리니치 시간 신호가 해저 케이블을 통해 대서양 건너 케임브리지 하버드로도 보내졌다. 그리고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제 자오선 회의에선 25개국이 GMT를 국제 시간 표준으로 정했다.
그 수십 년이 지났다. 전 세계의 시간을 동기화하는 더 나은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니치의 시간 기록원들은 자신들의 시계가 세계에서 가장 정확하다고 주장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계산은 신뢰할 수 없는 기준(지구가 한번 자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 근거해 있었다.
시계가 정확하게 시간을 재려면, 동일하게 반복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진자 시계는 물론 석영 크리스탈의 전자 진동 시계도 마찬가지다. 그리니치의 시계들은 태양이 하늘에서 같은 위치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이 과정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그
러나 20세기 과학자들은 지구의 자전 속도가 수년에 걸쳐 빨라지거나 느려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달과 태양 및 다른 행성의 중력이 미치는 영향, 핵과 맨틀의 지질학적 변화, 심지어 해양 및 기후 변화 등이 원인이다.
예를 들어 1900년의 지구는 2000년의 지구보다 약 4밀리초(1000분의 1초) 정도 느리게 자전했다. 따라서 세계 최고의 시간 기록자들은 당대 그 어떤 시계보다 정확했지만, 그들이 정의한 시간 역시 "진짜"는 아니었던 셈이다.
원자시
그러던 중 양자 물리학자들이 시간을 일정하게 측정하는 도구로 원자를 제시했다. 원자는 전자기 방사선의 특정 주파수를 만나면 에너지의 수준이 바뀐다. 그리고 측정기를 사용하면 이런 전환을 추적할 수 있다. 이것은 왕복하는 진자와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주기를 만들어 낸다. "원자 시계"의 기초가 되는 원리가 바로 이것이다.
원자 시계는 지구의 자전을 기반으로 한 시계들보다 훨씬 정확하다. 우리가 원자 시계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적용하면, 태양이 뜨는 시간이 오후 6시가 될 날이 올 것(지구의 자전이 정확히 24시간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세계 시간 기록자들은 윤초를 자주 추가한다.
런던 국립물리연구소에 있는 수소 메이저는 이런 유형의 원자 시계다. 전 세계엔 국가 계측 연구소가 운영하는 수백 개의 원자 시계가 있고, 이들이 새로운 시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계에서 시간을 읽어내는 건 간단치 않다. 지역의 중력 효과나 전자기기 간의 차이로 그 어떤 원자 시계도 완벽하진 않기 때문이다.
이런 불완전함을 보정하는 게 도량형 학자들의 일이다. 국립물리연구소 같은 실험실에선 이들이 수소 메이저의 시간 정보를 기록하고 별도의 장비를 사용해 보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보정된 자료는 파리의 국제도량형국(BIPM)에 보내진다. BIPM의 시간 기록원은 성능이 뛰어난 시계에 가중치를 부여해 이들 평균값을 만든다.
여기에 추가 조정이 더해져, 국제 원자시(TAI)가 만들어진다. 한 달에 한 번, BIPM은 "서큘러-티"라는 문서를 통해 국제 원자시를 발표한다. 국립물리연구소 등 각국의 연구소는 이 자료로 시계를 다시 맞춘다. 그리니치의 빨간 공 역할을 오늘날엔 서큘러-티가 하는 것이다.
사실 보통 사람들이 시간을 나노초까지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는 분야도 있다. 국립물리연구소의 도량형학자인 패트릭 길은 "가장 보편적인 예는 위성 내비게이션"이라고 말했다. "통신 동기화와 에너지 분배, 금융 거래 등에 쓰이는 시간도 정밀도가 높아야 합니다." 신기술 중에도 정확도 높은 시간을 요구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5G 네트워크나 자율 주행 내비게이션은 정확한 시간의 동기화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국제 원자시는 가공된 것이다. 판독값이 약간씩 다른 시계들의 단순한 가중 평균이 아니라, 합의로 만들어진 시간이다. 그럼 대체 1초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 세계가 사용하는 표준 단위는 시대를 따라 변화했다. 시간에 대한 우리의 정의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1초의 의미도 머지않아 바뀔지도 모른다. 초에 대한 재정의 과거에는 초를 평균 태양일(태양이 정오에 같은 지점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으로 약 24시간 정도를 말함)의 8만6400분의 1로 정의했다. 지구의 자전을 기반으로 초를 정의한 것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자전에 소요되는 시간은 불규칙하다. 20세기 중반 도량형학자들은 새로운 정의를 만들었다. 1967년에 세슘 원자의 고유진동수에 따라 초를 정의하기로 한 것이다. 무슨 뜻일까? 거듭 말하지만, 모든 시간 측정의 기반은 일정하게 반복되는 과정이다. 세슘 원자를 초단파에 노출시키면, 특정 주파수와 함께 전자기 방사선이 방출된다. 이 주파수를 측정하면 왕복하는 진자를 세는 것처럼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세슘을 활용한 정의 방식은 수십 년 동안 굳건하게 사용됐다. 길은 "동일한 표준을 중시하는 측량학 관점에선 매우 좋은 정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국립물리연구소는 물론 BIPM에서 서큘러-티 같은 문서에 사용된 계산에도 이러한 정의가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고 새로 나온 기술들이 더 정확한 시간을 요구하면서, 도량형 학자들은 초에 대한 재정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초에 대한 정의가 하룻밤 새 바뀌진 않겠지만, 아마도 2030년대쯤이면 1시간을 측정하고 공유하는 것과 관련된 가장 큰 변화가 나올지도 모른다. 국립물리연구소의 물리학자 앤 커티스는 "세슘과 초단파 관점에서 초를 정의할 때도 이미 광학 주파수로 더 나은 시계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나왔다"고 말했다. "광학 주파수는 수백 테라 헤르츠, 즉 초당 수백 조의 진동이 발생합니다."
주파수가 높으면 뭐가 좋을까? 커티스는 "자에 새겨진 눈금을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보통 자에는 밀리미터까지 표시되지만, 마이크로 미터는 표시되지 않는다. "눈금을 더 세밀하게 쪼개면, 훨씬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잖아요."
최근 국립물리연구소 같은 실험실에서 새로운 광학 기술을 실험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들의 목표는 향후 10년 안에 초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아주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 커티스는 "전 세계 계측 실험실에서 쓸 수 있는 실용적이고 실현 가능한 정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집단만 쓸 수 있는 것은 안 되죠. 우리가 보편적인 재정의라 부를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만들어진 시간 완벽하게 안정되고 정확한 속도로 돌아가는 시계는 지구에 없다. 인류가 해시계를 사용할 때도 그랬고, 원자시를 사용하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도량형 학자들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시간을 정의한다. 제 아무리 정확하다는 원자 시계도 "조정"이 필요하다. 도량형학자들이 윤초를 추가하는 것은 인간의 필요에 맞게 시간을 조정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오후 6시에 일출을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시간은 우리의 합의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볼 때, "진짜"는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인류가 생활하고 일하기 위한 것이다. 각 지역별로 시간을 정의하던 시기로 인류가 돌아간다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기술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기차는 멈춰서고, 금융 시장은 붕괴될 것이다. 좋든 싫든 오늘날의 세상은 시계의 시간 위에 서 있다.
그래서 과연 이 구조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만한 것이다. 도량형학자처럼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면, 시간의 의미는 달라진다. 국립물리연구소에서 만난 한 과학자에게 '타임키핑'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시간 측정이라는 의미보다는 그가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인지 궁금해 던진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나는 (시간을) 오직 나노초 단위로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리처드 피셔는 BBC 퓨처의 선임 저널리스트이자 책 '더 롱 뷰(The Long View)'를 썼다. 트위터 계정 @rifish.
*영국 국립물리연구소(UK National Physical Laboratory)의 '시간 및 주파수 측정 개론(Introduction to Time and Frequency Measurement)'이라는 무료 온라인 강의를 통해 시간 측정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