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부통령 동남아 순방…아태 협력 모색

    • 기자, 조나단 헤드
    • 기자, BBC 동남아 특파원
  • 게재 시간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동남아 순방 두 번째 일정으로 베트남에 도착하면 이곳이 1975년 미국에 굴욕적인 철수를 강요했던 초대 반군 지도자의 이름을 딴 수도 호치민(옛 사이공)이 아닌 하노이라는 점을 감사해할 수도 있다.

베트남은 수년간 미국의 패전과 대규모 전쟁비용에 대한 허무함, 뿌리깊은 지역 반란에 맞서 전장으로 뛰어들어간 생명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미국이 아프간의 마지막 주둔지이자 정신 없는 대피 사태가 벌어진 수도 카불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오늘날 아프간과 과거 베트남이 갖는 분명한 유사점은 미국에게 충분히 불편한 일이 될 것이다.

세 번째 행운

해리스 부통령의 이번 방문은 바이든 미 행정부가 향후 미국의 번영과 안보를 위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동남아 지역에서 외교적 매력 공세를 펼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동남아 지역에 다시 집중할 것을 약속한 세 번째 미국 정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의 외교를 중동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재편하는 이른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정책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맞서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을 내세웠다. 두 전략 모두 광범위한 개념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미국의 위신이 하락할 것이라는 인식을 뒤집지도 않았다.

그러면 아프간에서의 실패 직후, 해리스 부통령이 싱가포르와 베트남 정부에 바이든 대통령이 무엇을 더 잘 할 것이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

그동안 동남아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 지역에 확실히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우려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집권 첫 6개월간 어느 동남아 지도자에게도 전화하지 않았고 유럽과의 관계 재건에 더 집중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두 달간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먼저 아시아를 방문하면서 미국이 이 지역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방콕 쭐랄롱꼰 대학의 안보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인 티티난 퐁수디락 교수는 "아프간 철수 방식은 미국의 신뢰성을 손상했다"고 말했다.

퐁수디락 교수는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앞으로 무엇을 하느냐에 달렸다"며 "오스틴 장관과 해리스 부통령 방문의 후속 조치로 동남아 백신 외교를 강화하고 인도-태평양 전략을 총동원한다면, 이는 중동, 그리고 미국이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탈피해 바이든 행정부에게 좀 더 집중적인 외교정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이 동남아에 2300만 명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기부하면서 동남아 내 미국의 이미지는 놀라울 정도로 상승했다. 특히, 해당 백신에 적용된 mRNA 기술의 품질은 앞서 대량 보급됐지만 효능은 덜한 중국산 백신과 크게 비교됐다.

해리스 부통령은 더 진지한 헬스케어 및 의료 파트너십을 제안하고 하노이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첫 번째 지역 지부를 개설해 미국의 이미지 상승에 활용할 예정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또한 싱가포르 순방 중에 동남아가 인공지능, 블록체인과 같은 신흥 기술의 디지털 보안과 합의된 표준을 다루는 디지털 무역 협정 아이디어를 채택하도록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5년 전 트럼프 전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전격 탈퇴한 데 따른 피해 이후, 미국이 자국의 경쟁력이 있는 지역에서 아시아태평양의 무역망에 다시 연결된다는 장점이 있다.

중국에 대한 도전

이는 여러 국가의 시장을 지배한 화웨이의 최첨단 5G 인프라를 포함해 중국이 통신 등 첨단 기술인 '디지털 실크로드'를 빠르게 추진하는 데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부분 중국에 있는, 소수의 전문 공급업체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글로벌 공급망 구조 변경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이슈들은 트럼프 전 행정부가 남중국해 미군 전력 투입, 중국과의 무역 분쟁 격화에 주력했던 것보다 동남아에서 훨씬 이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어느 동남아 국가들도 미국과 중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요구받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이러한 디지털 및 공급망 계획이 중국에 대항하려는 시도로 인식될 경우, 동남아의 열의도 제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지난해 11월 체결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CP)'을 통해 이미 중국과 긴밀한 무역관계에 속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미얀마 사태에 대한 압박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민주주의적 가치에 기반을 둔" 외교에 대해 많은 연설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거의 무관심했던 인권은 싱가포르와 베트남에서 논의될 주제 중 하나다.

그러나 오바마 전 대통령이 동남아를 방문했을 때 했던 연설만큼 인권 문제를 크게 다루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역사의 활이 자유를 향해 휘어져 있다'는 오바마의 발언은 젊은이들에겐 영감을 줬지만 보다 권위주의적이고 반대 의견을 잘 용납하지 못하는 동남아 정부들에는 별로 매력이 없었다.

해리스 부통령은 분명 미얀마 민주정권 회복을 위해 동남아 국가들의 보다 단호한 조치를 촉구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여전히 동남아 10개국 연합인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이 미얀마 위기 해결을 위한 노력을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직까지 아세안의 미얀마 외교는 아주 더디게 진행 중이다.

아세안의 중심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은 동남아 각국 정부에 중요하다. 동남아 국가들은 미중 간에 점점 첨예해지는 경쟁, 미국 외교에서 우위를 점한 미국, 호주, 일본, 인도의 안보협의체 '쿼드'로 긴장한 모양새다.

퐁수디락 교수는 "아세안의 악몽은 미국과 관련이 없어지는 것", "평화와 안보를 위한 지역 활동의 중심성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아세안 회원국들에겐 쿼드가 확대되지 않는 것, 쿼드가 아세안을 무색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세안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7년, 바로 옆 인도차이나에서 전쟁의 공포를 목격한 국가들에 의해 창설됐다.

사이공 함락

1975년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군하자 베트남은 분열되고 취약해졌으며, 1977년부터는 약 15년간 베트남-캄보디아 전쟁이 있었다. 아세안은 캄보디아의 국력을 쇠퇴시킨 이 전쟁을 종결하려 애썼다.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46년 사이에 벌어진 사이공 함락과 카불 함락의 놀라운 유사점을 순방 기간 동안 반드시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미국이 아프간 철수로 불러일으킨 피해를 회복할 수 있다는 증거로서, 미국과 베트남의 긴밀한 경제적, 전략적 유대관계를 분명 강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