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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앤제리스: ‘아이스크림’이 이스라엘서 논쟁 대상 된 까닭
- 기자, 엠레 아지즈러리
- 기자, BBC World Service
- 게재 시간
무더위를 식혀 줄 아이스크림이 이스라엘에선 '뜨거운 감자'가 됐다.
미국의 아이스크림 제조업체 밴앤제리스가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서 자사 아이스크림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다.
이들 지역은 팔레스타인 인구 밀집 지역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팔레스타인 세력과 전쟁을 치른 이래 이 지역을 점령해 왔다. 현재 유대인은 약 60만 명이 살고 있다.
밴앤제리스는 이스라엘 점령지에서의 판매가 "자사가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이스라엘 본토에서의 사업은 중단하지 않기로 했다.
벤야민 네타냐후 전 이스라엘 총리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어떤 아이스크림을 불매해야 하는지 이제 알겠다"며 밴앤제리스의 결정을 비판했다.
밴엔제리스의 이번 결정으로 얼마나 큰 변화가 생길까?
이스라엘의 반응
현지 언론사 예루살렘포스트 기자 세스 프란츠만은 이번 사건이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적 보이콧으로 이어질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썼다.
프란츠만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기술 업체들은 올해 1~5월 사이에만 100억달러(11조4950억원)를 유치했다. 그는 "이런 게 '보이콧'의 형태라면, 이스라엘이 보이콧 없인 어떤 성과를 낼지 궁금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 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나프탈리 베네트 총리는 "강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법적 조치 등 중대한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의 우려는 일부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이 밴앤제리스의 이번 결정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
팔레스타인 측은 밴앤제리스의 판매 중단 조치가 현재의 서구 중심 분위기에선 매우 중대한 발걸음이라고 보고 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Palestinian Solidarity Campaign)의 공식 트위터 계정은 "엄청난 일"이라며 "역사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아이스크림 하나, 정말 '판도' 바꿀까
밴앤제리스는 소위 '이름값'이 높은 업체다. 세계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아이스크림 제품 중 하나로 매출은 10억달러(1조1500억원)를 넘나든다.
처음엔 유대계 미국인 친구 두 명이 세운 작은 독립 회사로 시작했다. 회사는 빠르게 커졌고, '유통 공룡'으로 불리는 유니레버에 인수됐다.
미국에서 밴앤제리스는 '자유 미국'의 상징이기도 하다. 인종 간 평등과 기후 변화, 성 소수자 문제 등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 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들을 비판하는 뜻으로 '피칸 저항(Pecan Resist)'이라는 이름의 맛을 출시하기도 했다. 견과류인 피칸을 넣은 제품으로, 영어 문장 '우리는 저항할 수 있다(We Can Resist)'와 발음이 비슷한 점을 노렸다.
미국에 기반을 둔 좌파 계열 유대계 언론사인 쥬이시 커런츠(Jewish Currents)에 기고하는 알렉스 케인은 밴앤제리스의 이번 결정을 두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함의보단 미국 내에서 벌어지는 관련 논쟁에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트위터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점령'에 동조할 뜻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썼다.
보이콧·박탈·제재 운동(Boycott, Divest and Sanctions movement, BDS 운동)을 이끄는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은 이스라엘의 현 팔레스타인 점령 상황이 '아파르트헤이트(20세기 중후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진행된 인종 분리 정책)' 수준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점령뿐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자체에 대한 보이콧을 요구하고 있다. 남아공에서 벌어졌던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운동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이 같은 주장을 부인한다. 이런 가운데 BDS 운동은 이스라엘 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언론인 벤 드로 예미니는 "BDS 운동은 이스라엘의 존립을 위협한다"고 했다.
남아공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나
1994년 소수 백인 정부 시대가 끝나기 전까지, 남아공산 재화와 서비스를 불매하는 국제적 보이콧이 있었다. 많은 기업들은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남아공에서 철수해야 했다.
1980년대 상점들에서 남아공산 제품을 퇴출시키고 은행들의 남아공 지점을 철수시키며 남아공의 국제 스포츠 경기 및 문화 행사 참가를 막은 건 다름 아닌 평범한 민중들의 캠페인이었다.
국제적 보이콧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처음 터져나온 건 1959년 영국 런던의 한 회의에서였다.
당시 영국령 탕가니카의 정치인 줄리어스 니에레레(훗날 탄자니아 대통령이 되는 인물이다)는 영국인들을 향해 "특별한 걸 요구하는 게 아니다"라며 보이콧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남아공산 재화를 사지 않음으로써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지원하는 걸 멈춰 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팔레스타인 운동가들이 서구 사회에서 불러 일으키려 하는 분위기도 이와 비슷하다.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에 탄력이 붙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그러나 주류 서구 사회가 이 '보이콧 열차'에 탑승하자마자 운동은 즉각 효과를 냈다.
오늘날 젊은 팔레스타인 운동가 세대를 주축으로 하는 소셜미디어 네트워크는 이 같은 정서를 한층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BDS 운동을 '반유대주의'라고 비판했다. 보이콧 반대 세력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밴앤제리스 이전에 '에어비앤비'가 있었다
앞서 2019년엔 에어비앤비(Airbnb)가 서안지구의 유대인 거주지역 내 매물을 모두 삭제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와치(Human Rights Watch)는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지역'이라고 비판하며 당시 에어비앤비의 결정을 환영했다.
그러나 다섯 달 뒤 에어비앤비는 이 같은 결정을 번복해야 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벤 자말 국장은 에어비앤비가 이스라엘과 친이스라엘 기관들의 압박을 받았다고 봤다.
미국에선 30개 넘는 주에서 '반BDS 법안'이 통과됐거나 비슷한 행정명령이 시행됐다.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한 보이콧에 참여하는 기업과 단체, 개인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규정들이다.
길라드 에단 미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해당 지역들의 주지사에게 서한을 보내 밴앤제리스에 대한 제재를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
반BDS 법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이 같은 움직임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아이스크림 승강이'의 다음 목적지는 아마도 미국 법정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