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사생아 '대우키즈'는 아빠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다
- 기자, 김지현
- 기자, BBC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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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서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에서 인천공항에 도착한 서관우(당시 29세)의 가방에는 단돈 30만 원이 들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 라이베리아를 떠났다는 아버지를 금방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라이베리아에서 경험한 적 없는 혹독한 겨울이 3 번 지나고서야 2020년 2월, 관우는 만나지 못할 것만 같았던 아버지를 처음으로 품에 안았다.
관우는 1988년 3월 라이베리아인 어머니 로레타 보웬과 당시 대우건설 노동자로 파견된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대우건설은 1984년 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와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을 수주받아 한국 건설 노동자들을 파견했다. 몬로비아에 도착한 한국 남성들 다수는 가정이 있는 30-40대로 라이베리아에 장기 체류하면서 10대 중반에서 20대 초반의 현지 여성들을 만났다. 이렇게 1988년 전후로 약 30명의 한국계 라이베리아 혼혈아가 태어났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보웬에겐 관우 아버지가 '첫 남자'였다. 보웬은 그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이미 가정이 있던 그는 보웬의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며 자신의 이름 석 자만 남기고 1987년 말 홀연히 한국으로 떠났다.
1980년대 초부터 정치가 불안정하던 라이베리아는 제 1차(1989~1997년), 2차(1999년~2003년) 내전을 겪는다. 정부와 반란군, 인접국인 기니, 시에라리온의 지원까지 개입한 내전 동안 약 5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차 내전의 조짐이 보이자 대부분의 한국 노동자들은 탈출했고 라이베리아인 엄마들은 임신한 몸으로 또는 젖먹이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 아버지들과 연락이 끊겼다.

혼혈아들은 커가면서 떠나버린 한국인 아빠의 얼굴을 닮아갔다. 관우는 "한국인 혼혈아들은 어릴 때부터 '중국인', '수치스러운 아프리카인' 등 놀림받으며 자랐다"고 회상한다. 라이베리아에는 독일인, 레바논인 건설 노동자들도 다수 건너갔는데 이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대부분 경제적 지원을 받은 반면, 한국인 아빠들은 대부분 종적을 감췄다고 관우는 말했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땅에서 홀어머니와 경제적 자립은 험난했다. 아버지의 이름을 '오주영' 또는 '오중영'으로 기억하는 혼혈인 아이삭 깁슨이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겨우 16세였다. 깁슨은 어린 시절에 대해 "빈 속을 움켜쥐고 잠드는 날이 많았고 늘 배가 고파 울었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동네에서 빵을 팔며 생계를 유지한 관우는 그래도 운이 좋았다. 친부의 지인이었던 고 서안모 씨(2020년 작고)가 관우를 딱히 여겨 자신의 법적 양자로 등록하고 성씨를 물려줬다. 서 씨의 지원 아래 관우는 라이베리아에서 대학 교육까지 마쳤다.


혼혈아들이 스무 살 무렵이던 2008년과 2010년, 한국의 한 시사주간지와 방송사가 이들을 밀착 취재했다. 혼혈아들은 변화를 기대했지만, 한국 사회는 머나먼 서아프리카 경제빈국에 버려진 사생아들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라이베리아의 1인당 실질 GDP는 2019년 기준 1414 달러(한화 약 157만 원)으로 세계 178위다.
이 중에 관우가 직접 아빠를 찾고자 마음 먹었다. 한국으로 갈 경비를 마련하고자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다.
몬로비아에서 서울의대까지…긴 여정의 시작
라이베리아에서 한국으로 오는 여정은 길었다. 몬로비아에서 모터바이크를 타고 코트디부아르의 아이보리 코스트(상아 해안)를 따라 가나로, 가나에서 비행기를 타고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다시 중국으로 가서 마침내 한국에 도착했다.
친부를 찾으려면 한국에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신분이 필요했다. 관우는 서 씨의 한국 가족관계증명서에도 등록된 법적 양자였지만, 국적은 여전히 라이베리아로 3개월 관광 비자만 허용됐다. 서 씨는 관우를 뒤따라 입국해 양아들의 귀화를 신청하려 했지만, 성인이자 한국살이 경험이 거의 없는 외국인에게 귀화 요건은 까다로웠다. 서 씨가 법무국에게 맨 처음 들은 답변은 "유전자 검사로 친자임을 증명하라"는 것이었다.

관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의 영문 언론사를 찾아 기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페이스북에 한국계 라이베리아인 연합 그룹을 만들었다. 그러던 중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을 통해 전 세계 한인들의 법률서비스를 지원하는 세계한인법률가회(IAKL) 공익위원회를 소개받았다. 위원회 소속인 박선영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가 관우의 친부관계 인지 회복을 돕겠다고 나섰다. 당시 박 변호사가 전달받은 정보는 관우의 언론 인터뷰 기사, 어머니 인적사항, 아버지 이름으로 추정되는 한글 석 자가 다였다.
박 변호사는 "30년 전 인물을 어떻게 찾나 막막했다. 오래 전 파견 노동자들 정보를 사기업이 보관할 가능성도 희박했다"며 "경찰 및 법조인들과 상의하다 출입국관리기록은 평생 남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법원은 출입국관리소 사실조회 소장을 채택했고, 1988년 전후로 라이베리아에 출입한 사람들 중 관우의 아버지와 비슷한 이름 조회를 신청했다. 2019년 5월, 사실조회 결과가 2주 만에 나왔다. 법원의 주소보정명령에 따라 아버지의 주민번호로 주민등록등본이 확인됐고, 법원은 아버지 주소로 관우가 친자임을 인지하라는 '인지청구소송'이 들어왔다는 소장을 우편 송달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3달이 지나도록 소장을 수신하지 않았다. 박 변호사와 관우는 소장 미수신으로 하염없이 기다렸던 기간이 가장 힘들었다고 회상한다. 아버지의 전화번호를 알기 위해 법원에 이동통신사 사실조회도 신청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범죄자로 추정되지 않는 이상 스토킹 등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2019년 9월 말, 아버지 본인이 소장을 수신했다는 연락이 왔다. 같은 해 12월, 법원은 서울의대 법의학연구소에 관우 부자의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고 마침내 2020년 2월 유전자 감정일이 다가왔다. 서울의대 법의학교실에서 32년 만에 처음 만난 둘은 서로를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울었다.
관우는 "날 외면하고 살아온 아버지를 만나면 때려주리라는 별 나쁜 생각을 다 했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모든 미움이 사라졌다"며 "마치 엄청 목마른데 시원한 물을 한 잔 마시고 속이 편해진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검사 단 3일 만에 '부권확률 99.99% 일치'라는 감정서가 나왔다.
아프리카 곳곳에 남겨진 한국계 사생아들
관우는 친부의 성으로 귀화를 신청했고 올해 안에 한국 국적 취득을 기대하고 있다. 평일엔 충북 진천군의 한 공장에서 생닭을 가공하고 주말엔 경기 평택시의 집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교회에 간다. 아직 한국어를 잘 못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지만, 언젠가는 국내 대학원에 진학해 농업을 전공할 계획이다. 장차 라이베리아로 돌아가 고향의 농업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관우의 이야기는 라이베리아 현지 언론에 알려졌고, 이제는 30대가 된 혼혈인들의 희망이 됐다. 7살 딸아이의 아빠인 깁슨은 언젠가 친부를 찾기를 소망하고 있다.
레이놀드 건우 최의 어머니 줄리엔 세네는 남편이었던 고 최광철 씨의 친구이자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했던 김모 씨를 찾고 싶어한다. 한국에도 가정이 있던 최 씨는 건우 모자를 돌보다 2001년 가나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뒀다.
관우는 한국계 라이베리아인 연합을 확장해 아프리카 곳곳에 남겨진 한국 혼혈아들이 친부를 찾는 일에 나섰다. 가나, 모잠비크, 나이지리아에도 아버지의 성씨와 한글 이름을 물려받은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관우는 이들 모두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보다는 그리움이 더 크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와 비영리기구 등이 아프리카에 남겨진 혼혈 사생아들에게 관심을 주길 바랍니다. 이들은 한국에 우호적이고 영어도 잘 해요. 아버지를 찾는 일만 도와주더라도 한국의 든든한 아군이자 유용한 인재가 될 겁니다."
박 변호사는 "아빠를 찾고자 하는 혼혈아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봐 왔다. 그들의 아픔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한두 마디로 위로할 수 없다"며 "자신으로 인해 태어난 아이에겐 본인이 질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