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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도 여성 경력단절 심각... 선거 앞두고 '통큰 보육예산' 발표
- 기자, 프란세스 마오
- 기자, BBC 뉴스, 시드니
- 게재 시간
싱글맘 나탈리 라페노트는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네 자녀를 키우는 등 많은 일들을 동시에 해낸다.
올해 42세인 라페노트는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 살며 매일 전쟁같이 바쁜 일상을 치르고 있다. 라페노트는 지난해 다른 도시에서 캔버라로 이사했는데, 가족과 더 가까운 곳에 살면서 육아 관련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라페노트는 막내를 전일제 보육기관에 맡기고 싶지만 그럴 여력이 안 된다. 때문에 어머니에게 일주일에 며칠간 도움을 받고 있다.
이렇게 부모에게 도움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라페노트는 보육 비용이 "저축을 근본적으로 막았다"고 말한다.
호주는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보육 시스템을 가진 나라 중 하나로, 전국에서 라페노트처럼 육아에 힘겨워하는 사연이 반복되고 있다.
최저소득자들은 80% 환불 방식으로 보육 비용 보조금을 지원받는다. 하지만 수수료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많은 가정들에겐 맞벌이보단 부모 한 명이 집에 남아 아이들을 돌보는 편이 훨씬 낫다.
이러한 상황은 주로 육아 문제로 몇 년간 경력 단절을 겪는 여성들에게 커다란 연쇄효과를 일으켰다.
라페노트는 "내 주변엔 경력 단절 후 직장에 돌아가지 않기로 한 친구들이 많다. 돌아가면 사실상 손해를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성 문제' 해결
이전보다 더 많은 남성들이 육아를 책임지고 있지만, 호주에서 육아는 여전히 주로 여성들의 몫이다.
이는 호주 정부가 지난 11일 연방 예산안에서 보육을 큰 부분으로 책정한 근거 중 하나다. 정부는 3년에 걸쳐 보육 예산을 17억호주달러(약 1조4860억원) 증액하기로 발표했다. 가정들이 보육 비용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고 더 많은 여성들을 직장에 복귀시키자는 취지에서다.
이는 올해 정치평론가들이 호주 정부의 경제 계획을 '여성 예산'으로 표현하도록 한 수많은 정책 중 하나다.
이렇게 정부가 여성 예산을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호주는 내년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올해 초, 집권 보수당인 자유당의 스콧 모리슨 총리는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데 힘입어 선거에서 승리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 호주 의회 내 성폭행과 성차별 의혹이 불거지면서 보수정권의 "여성 문제"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이는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불평등한 경험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논의를 촉발하기도 했다.
모리슨 총리는 이 논의에 뒤늦게 대응했고, 어설픈 반응과 때로는 방어적인 태도로 여성 팬을 거의 얻지 못했다.
그는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한 크리스천 포터 전 법무장관에 대한 수사를 거부했고, 자신의 아내와 상의한 후 성폭행 혐의에 대해 더욱 잘 이해했다고 발언해 공공의 분노를 자아냈다.
보수당은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는 데 실패했고, 그 결과 보수당에 대한 여성들의 지지율은 추락했다. 여론조사에선 대신 야당인 노동당에 대한 여성 지지율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19년 총선에서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10% 더 많은 비율로 자유국민연합에 투표한 성별 지지율 대립을 악화한 것이다. 호주의 정치여론분석기관인 '호주 선거연구'에 따르면, 2019년 결과는 남녀 유권자 간 최대 격차를 기록했다.
시드니대 호주 정치 전문가인 사라 카메론 박사는 "자유당은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율이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해결책이 필요했다. 정치분석가들은 정부가 그 해결방안으로 여성을 위해 돈을 펑펑 지출하는 것으로써 이 예산을 제안하길 선택했다고 말한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 신문은 "모리슨 정부는 '여성 문제' 해결을 위해 수십억달러를 쏟아부었다"고 보도했다.
유방암과 자궁경부암, 자궁내막증, 섭식장애 등 여성 건강과 관련된 사안에도 추가 예산이 투입됐다.
가정폭력 대책 서비스에도 더 많은 예산이 책정됐고, (대부분 여성인) 한부모 가정이 더 적은 보증금으로 집을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발표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보육 부문이 가장 큰 예산 증액을 받을 전망이다.
'고장난' 시스템
올해도 호주에선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13.4% 적게 번다. 호주 정부기관인 직장양성평등청에 따르면, 남성의 주 평균 전일제 임금은 1804호주달러인 데 비해 여성은 1562호주달러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선 보육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육아는 전일제 근무로 복귀하는 여성들과 이들의 최대소득능력을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로 남아 있다.
정부의 예산안은 더 많은 보육비용을 지원하는데, 여기에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보육시설에 2명 이상의 자녀를 맡기는 약 25만 가구만 혜택을 받게 된다.
하지만 25만 가구는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호주 가정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자신의 아이 중 1명만 보육시설에 맡기는 라페노트 같은 부모들은 이 혜택에서 제외된다.
라페노트는 "내가 좀 더 이 혜택의 고려 대상이 됐거나, 혹은 정부가 더 공정한 보육을 위한 방안들을 고안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할 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어떤 지원도 환영하지만, 이 조치는 단지 고장난 시스템에 "단기간에 점진적으로" 현금을 투입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성 불평등 전문가인 엘리자베스 밋첼 시드니대 부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보육 모델은 모든 사회경제적 계층의 아이들에게 열려있는,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보편적 제도라고 말한다.
지난해 호주의 코로나19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정부는 여성 근로자들을 직장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단기간 무상보육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가정의 소득 수준에 따라 정부지원금을 제공받는 제도로 되돌아갔다.
이 제도 하에 가정들은 주요 육아 책임자가 많이 일해서 임금을 많이 벌 경우, 보육지원금이 삭감되는 변환점에 종종 부딪친다.
이는 (주로 여성인) 주요 육아 책임자가 아이 양육 기간에 직장으로 복귀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흔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가정의 회계 관점에서 보면, 이들이 일하지 않고 집에 있으면서 보조금을 받을 때 육아비용이 더 저렴하다.
물론 육아를 위해 직장 생활을 기꺼이 보류하는 여성도 많다. 그러나 밋첼 부교수는 여성들이 금전적 필요성 때문이 아닌, 온전히 개인의 선택으로 자유롭게 이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라페노트는 호주의 현행 육아제도가 부모들에게 너무 큰 부담을 준다며 "여성들에게 정말 건강하지 않은 제도"라고 말한다.
이어 "정부가 보육에 대한 적절한 투자, 그리고 이를 세워나가는 일을 장기적인 투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에는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