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이 이름이라 개명을 고민하는 마을

석면

사진 출처, Alamy

게재 시간

지역사회가 기업이나 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전 세계가 초 경쟁하는 시대에선 말이다. 그런데 하필 지역사회 이름이 전 세계 60개 국가에서 금지된 발암물질이라면 사정은 더 어려워진다.

캐나다 남동부 퀘벡의 석면을 뜻하는 '아스베스토스'라 불리는 작은 프랑스계 마을이 그런 곤경에 처했다. 아스베스토스시 캐롤라인 페이어 시의원은 지난해 경제개발 담당 직원이 국제 투자 유치를 위해 미국에 갔을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사람들은 '아스베스토스'이라고 적혔다는 이유로 직원의 명함까지 거부했다. 명함마저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출발부터 이러면 상황이 쉽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스베스토스는 과감한 조치를 내놓게 된다. 지난 10월 14일~18일 사이 주민 6,800명이 마을 이름을 변경하는 투표를 실시한 것 이다. 라주르-데스-칸톤, 제프리-르-락, 라로셀, 프릭스, 트로이스-락스, 발데스-소스가 마을 이름 후보에 올랐다.

당초 4개만 후보에 있을 예정이었으나 주민들이 선택의 폭이 좁다고 항의하는 바람에 최종 6개 이름이 후보로 등록됐다. 투표 진행에 미화 10만 달러가 들어가는 등 지방자치단체로선 금전적 부담도 있지만, 단체장들은 실보다 득이 많을 것으로 확신한다. 페이어 의원은 "이름 때문에 훌륭한 사업 기회를 잃고 있어 매우 슬프다"라고 말했다.

아스베스토스 마을이 늘 이랬던 것은 아니다. 백년 이상 석면 채굴로 먹고 살았던 이곳에서 석면은 한때 건설 현장과 제조업에서 주목받는 광물이었다. 대규모의 제프리 광산은 수천 명에게 고임금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마을 개발을 주도했다. 또한 마을의 정체성이 되어주기도 했다.

한때 마을 경제의 중심지였던 제프리 광산은 2011년 완전 폐쇄됐다

사진 출처, Alamy

사진 설명, 한때 마을 경제의 중심지였던 제프리 광산은 2011년 완전 폐쇄됐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 석면이 중피종이나 폐암을 일으키는 물질이라는 증거가 더 많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10만 명 이상이 석면 노출과 관련된 병으로 사망한다고 추정했다. 2011년 제프리 광산은 영구 폐쇄됐다.

이후 아스베스토스 당국은 이미지를 쇄신하고 지역 경제를 먹여 살린 수단을 창출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노력해왔다. 이곳을 암벽등반 시설과 산악 자전거 도로를 갖춘 어드벤처 관광지로 만들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보건상의 우려로 불발됐다.

페이어 의원에 따르면 당국은 브랜딩과 홍보 컨설턴트를 고용해 마을의 로고와 웹사이트를 재단장했고 수많은 출장을 통해 기업투자자를 설득시키는 노력도 했다.

하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페이어 의원이 말이 이어진다. "작년에 우리 마을에서 사업하길 고려한 회사가 있었다. 그 회사를 통해 일자리 30개가 창출됐을 기회였다. 그러나 이 회사의 사업지 선택 조건 중 하나가 선적이나 수출에 지장이 없는 이름을 가진 지역일 것 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기회를 놓쳤다. 비슷한 일을 지난 몇 년 동안 자주 겪었다."

아스베스토스 마을의 고생은 지역사회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일깨워 준다. 특히 나중에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거나 어쩌다 보니 특이하다고 인식되는 경우의 이름은 더 그렇다. 지역 주민들이 이런 어려움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마을마다 그리고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에 따라 갈린다. 어떤 마을은 아예 개명을 선택했는가 하면 이름 때문에 생긴 관심을 역이용한 사례도 있다. 후자의 경우 마을 이름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프랑스 남부 메츠의 '반달(공공 기물 파손자)' 마을 사람들은 이름 때문에 생긴 반갑지 않은 관광지로서의 유명세를 거북해했다. 2008년 이 마을 사람들은 마을 이름 개명에 투표했다. 당시 이곳의 클로드 벨레이 시장은 "너무 많은 방문객이 잘못된 기대를 안고 이곳에 온다. 우리는 공공 기물 파괴자가 아니며,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우리를 언급할 이유가 없다" 며 불쾌감을 표했다.

노르웨이의 헬 마을은 이름 덕분에 수십 년간 이익을 얻고 있다

사진 출처, Alamy

사진 설명, 노르웨이의 헬 마을은 이름 덕분에 수십 년간 이익을 얻고 있다

그러나 부정적 이름이 엄청난 돈을 벌어다 주는 일도 있다. 이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사례는 노르웨이의 '헬(지옥)' 마을일 것이다. 이 이름은 한 세기동안 인기 높은 관광지인 절벽 동굴인 노르웨이 고어 '헬리르'에서 유래했다. 1930년대 뉴욕타임스는 미국 관광객들이 이 마을 기차역 표지판 옆에서 사진을 찍고 '지옥이 얼어붙었다'고 쓰여 있는 엽서를 산다고 보도했다. 유명세 덕분에 헬에선 매년 헬 블루스 페스티벌과 랠리 크로스랠리크로스 세계선수권대회까지 수많은 행사가 열린다. 헬이 속한 트뢰넬라그주의 마케팅 및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크제르스티 그레거는 "헬은 이름 때문에 하나의 여행 브랜드가 됐다"며 "이곳 주민들은 헐리우드식 지옥 표지판까지 산비탈에 내걸면서 이름을 더 드러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여러 지역이 SNS를 활용해 자신의 이름을 돈벌이 기회로 삼으려는 획기적인 시도를 했다. 미국의 '보링(Boring지루한)', 스코틀랜드의 '덜(Dull, 따분한)', 그리고 호주의 '블랜드(Bland, 단조로운)' 마을은 연합하여 '특별한 공동체 연맹'이라는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어 코카콜라, 유니레버, 재규어 광고 캠페인에도 등장했다. 이 마을의 이름은 모두 정착민들의 성에서 유래된다.

이름으로 돈을 벌기 위해 당혹감을 극복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캐나다 뉴펀들랜드 어촌 지역인 딜도 (Dildo, 인공 남근)의 일부 주민들은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이름 때문에 조롱받는 상황이 지겨여 졌다. 그들은 개명 캠페인을 벌였지만 딜도 시민 대다수가 지금의 이름을 유지하자는데 표를 던졌다.

딜도 주민 40%는 관광으로 먹고 산다

사진 출처, Alamy

사진 설명, 딜도 주민 40%는 관광으로 먹고 산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 결정은 성공했다. 딜도 지역 서비스 지역 위원회 앤드류 프리테위원에 따르면 주민 1200명 중 40% 가까운 사람들이 딜도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 미국과 캐나다 관광객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는 "스스로 마케팅을 할 필요는 없었다" 며 알아서 홍보됐다고 자부했다. 또한 "일부 관광지들은 마케팅에 수십만 달러를 쓰지만 우리는 한 푼도 쓸 필요가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2019년 미국 토크쇼 진행자 지미 키멜이 딜도의 시장이 되겠다고 장난 캠페인까지 발표하면서 현지 기지국이 과부하 될 정도로 관광객이 급증했다. 프리티위원은 "지미 키멜 이후 관심이 10배나 늘었다"며 "딜도에 새로운 사업체들이 들어왔다. 이들은 지역사회와 연고가 없지만 이곳이 핫하다고 판단해 사업을 연 것"이라고 설명했다.

괴상한 이름이 돈이 된다는 걸 직접 경험한 프리티 위원은 아스베스토의 개명 결정을 다소 놀라워했다. "만약 평범한 이름으로 바꾸면 더 눈에 띄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덜, 보링, 블랜드 마을들은 '이름값'을 위해 협업하기도 했다

사진 출처, Alamy

사진 설명, 덜, 보링, 블랜드 마을들은 '이름값'을 위해 협업하기도 했다

아스베스토스시는 홍보로 그다지 눈에 띄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지만 개명을 한다고 해도 퇴색된 과거의 유산을 털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의 안드레아 이슈인슈 연구원은 "잠재적인 투자자들이 꽤 간단히 이곳의 예전 이름이 아스베스토라라는걸 알 수 있다"며 "다음 날 깨어나면 신시가지가 생기는 등, 역사가 그렇게 쉽게 묻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개명으로 생긴 경제적 이익이 주민의 이해관계와 상충할 경우 개명 추진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4년 전 뉴질랜드 와인 및 요식업의 중심지 중 하나인 블렌하임에선 '말보로 시'로 바꾸는 개명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곳이 세계적인 인지도의 말보로 와인 생산지인 것을 알리고 와인 관광을 촉진하기 위해서였다. 이 캠페인은 지역 관광 기관과 기업 와이너리의 지지를 얻었지만 블렌하임 시민들의 분노를 사다가 결국 무산됐다.

캠페인을 시작한 미첼 가디너는 개명으로 "관광 수입이 적어도 기존보다 10~15% 증가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그러나 일이 커졌고 대중의 반발은 너무 커졌다. 수퍼에서 공격 당하는 일도 있었다. 앞으로도 개명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두 세대를 기다려야 할인지도 모른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아스베스토스의 페이어 의원은 개명으로 후세에게 좀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말했다. 개명 혜택은 10년 이상 경과하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며 이런 이유로 투표 가능 연령을 14세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개명에 대해 매우 현실적"이라고 그는 말한다. "기적을 바라지도, 어느날 갑자기 모두가 이곳으로 오는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젊은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래 이곳에 산다. 그들 입장에선 마을 이름 때문에 실직에 이르는게 너무 타격이 크다. 우리는 개명을 하면 좀 더 미래 지향적이고 나아가 경제발전이 가능한 방법이 열릴 것으로 본다"고 그는 덧붙였다.

지난달 19일 아스베스토스 주민들은 투표 결과 "발데스-소스"를 새로운 도시 이름으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