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의 '생전 퇴위'가 유럽의 다른 왕실에 미칠 영향

동영상 설명,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이 퇴위 선언문에 서명하는 모습
    • 기자, 로라 고지
    • 기자, BBC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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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이 14일(현지시간) 즉위 52년 만에 왕위에서 물러나면서 많은 덴마크인들이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여왕이 장자인 프레데릭 왕세자(55)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생전 퇴위하면서, 과연 북유럽 3개국 왕실의 금기가 깨진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메테 프레데릭센 현 덴마크 총리가 “덴마크의 전형”이라고 표현한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은 애연가이자, 대담하고 다재다능한 인물로, 지난 반세기 이상 왕관의 주인이었다.

덴마크 국민들은 여왕의 총명함과 독특함, 휴대전화와 인터넷에 대한 공개적인 반감,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 등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마르그레테 2세 또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왕실 3곳의 전형적인 접근법을 택했다. 이에 “자전거를 타는 국왕”이라는 친근한 별명과 함께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이는 북유럽인들의 자전거에 대한 사랑에 대한 존중일 뿐만 아니라, 좀 더 엄격한 분위기의 다른 왕실과 북유럽 왕실을 구분 짓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젊은 왕족들 또한 이러한 이미지를 굳혀나가고 있다. 이번에 왕위를 물려받은 프레드릭 덴마크 왕세자는 록 음악을 좋아하는, 친근하고 현실적이며 가정적인 남자로 비치고 있으며, 노르웨이의 왕위 계승자인 호콘 왕세자는 갈라 만찬에서 유쾌한 장난을 치기로 유명하다. 아울러 스웨덴이 사랑하는 빅토리아 왕세녀는 자신의 섭식 장애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아울러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족 다수가 자녀들을 공립 학교에 보내고 있으며, 북유럽 3개국의 왕위 계승자 모두 평민과 결혼했다.

스웨덴의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 여왕, 노르웨이의 하랄 5세 국왕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지난 2012년 마르그레테 2세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모인 스웨덴의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 여왕, 노르웨이의 하랄 5세 국왕

이들 북유럽 3개국 왕실은 서로 친밀한 사이를 유지한다. 종종 상대 국가를 방문하기도 하고, 함께 휴가를 가기도 한다. 아울러 세 왕실은 사실 친인척 관계로, 스웨덴의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과 노르웨이의 하랄 5세 국왕은 마르그레테 2세 여왕과 각각 4촌, 6촌 관계다.

덴마크 현지 ‘TV2’의 왕실 해설가 마린 론데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북유럽 왕족들은 같은 가치관, 문화, 역사를 공유한다. 왕족들 모두 열심히 일하고, 국민들과 대화하며, 국민들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모습을 널리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에 북유럽 세 왕실은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출 수 있었다.

1970년대 후반, 스웨덴 사회는 칼 구스타프 16세의 외아들이 아닌 장녀 빅토리아 왕세녀가 왕위를 이을 수 있도록 왕위계승법을 개정했다. 칼 구스타프 16세 본인 또한 평생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며 기후 변화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하랄 5세 또한 진보적인 견해로 잘 알려져 있다. 2016년 하랄 5세는 노르웨이인이란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 남성을 사랑하는 남성, 서로를 사랑하는 여성과 남성”이라면서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한편,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폴란드, 스웨덴, 소말리아, 시리아 출신” 국민들에게 찬사를 보내며 난민의 권리도 옹호하는 열정적인 연설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북유럽 군주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단순히 겉치레 변화 그 이상임을 증명해냈는데, 일례로 대부분 왕실이 규모 축소를 택했다.

마르그레테 2세 여왕과 왕세자 부부 가족

사진 출처, PATRICK VAN KATWIJK

사진 설명, 지난 14일 즉위 52주년을 맞이한 날 퇴위를 택한 마르그레테 2세 여왕과 장남인 프레데릭 일가

2019년, 칼 구스타프 16세는 그렇게 많은 왕실 구성원에게 공무비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를 반영해 왕세녀의 자녀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손주를 왕실에서 제외했다.

3년 후, 마르그레테 2세 또한 왕실의 “미래를 보장”하는 한편 “시대에 맞춰 유지하고자”한다며 차남의 자녀 4명의 왕족 지위를 박탈했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들은 성공적인 모습이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왕실에 대한 지지율은 80% 이상을 맴돌고 있으며, 최근 스웨덴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왕실에 대한 반감은 지난 20년간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생전 퇴위는 마지막 장애물로 남아 있었다. 일각에선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사실 유럽 왕실에서 퇴위가 보편적으로 비난받는 관행은 아니다.

네덜란드에선 오히려 일종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1815년 독립적인 입헌군주국이 된 이후, 왕위에 오른 군주 중 4명이 자녀들을 위해 양위했다. 또한 룩셈부르크의 여러 대공들 또한 계승자에게 물려주며 내려왔다.

하랄 5세 , 마르그레테 2세, 노르웨이의 소냐 왕비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2011년 ‘세계 노르딕 스키 선수권 대회’에서 하랄 5세, 마르그레테 2세, 노르웨이의 소냐 왕비

물론 유럽 여러 지역에서 양위는 불쾌한 기억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일례로 스페인과 벨기에 전 국왕들은 대형 스캔들 이후 퇴위를 발표했으며, 영국에선 1936년 에드워드 8세 국왕이 이혼 전력이 있는 여성과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내려놓으며 헌법적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북유럽의 군주들은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이 이번 새해 전야에 이 같은 충격적인 발표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퇴위 관습을 전혀 따르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이제 오랜 건강 문제를 이유로 덴마크의 여왕이 물러나면서 많은 이들은 북유럽 다른 지역에서도 이와 같은 소식이 들려오진 않을지 생각하게 됐다. 북유럽 왕족들은 언제나 생전 퇴위 가능성을 반박하곤 했다. 마르그레테 2세 여왕도 마찬가지였다.

스웨덴 왕실 전문가 로저 룬드그렌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여왕은 죽는 날까지 하겠다는 … 자신의 입장을 늘 고수했었다”고 말했다.

일례로 2012년, 마르그레테 2세는 즉위 40주년 기념식에서 “나는 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왕좌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덴마크에서 유일한 퇴위 전례는 무려 1146년이 에리크 3세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스웨덴 왕실 해설가 안데르스 필블라드는 칼 구스타프 16세 또한 퇴위 가능성에 대해 종종 질문받곤 한다면서 “스웨덴 국민들이 국왕의 공무 수행 능력을 좋지 않게 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딸인 빅토리아 왕세녀가 무척이나 인기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눈밭에 함께 서 있는 프레데릭 덴마크 왕세자, 빅토리아 스웨덴 왕세녀, 호콘 노르웨이 왕세자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지난 2009년 그린란드에서 함께 한 프레데릭 덴마크 왕세자, 빅토리아 스웨덴 왕세녀, 호콘 노르웨이 왕세자. 비슷한 나이의 이 세 왕위계승자는 가까운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칼 16세 구스타프 또한 과거 죽는 날까지 왕위에 있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2014년 스웨덴 현지 매체 ‘익스프레스엔’과의 인터뷰에서 “양위라고요? 그런 단어는 우리 왕실에 없다. 적어도 역사적으론 그렇다”면서 “양위하지 않는 게 우리의 오랜 전통”이라고 발언했다.

이와 비슷하게 하랄 5세 또한 노르웨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겐 간단한 일이다. 최후의 최후까지 있을 것”이라면서 1991년 즉위 당시 맹세는 “평생” 이어질 것이라고 답했다.

크리스티 마리 스크레데 노르웨이 ‘NRK TV’의 왕실 특파원은 “노르웨이 국민들은 하랄 5세의 퇴위도 지지하겠지만, 모든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위에 남아 있겠다는 의지에 매우 감명받았다”고 설명했다.

양위에 대한 이들 군주의 거부는 놀라운 일이다. 수십 년간 나라를 위해 봉사했기에 물러난다 해도 비난할 사람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세 군주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칼 16세 구스타프(77)는 27세에 왕위에 올랐다.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이 물러나면서 그는 전 세계 군주 중 3번째로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가 된다.

다음 달이면 87세가 되는 하랄 5세는 심장병과 방광암으로 수술받는 등 여러 차례 지병으로 자리를 비우고 있다. 또 작년엔 감염 증세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이에 호콘 왕세자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며 매끄럽게 공무를 수행하는 모습이다. 다른 북유럽 왕위계승자들과 마찬가지로 호콘 왕세자는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그렇다면, 마르그레테 2세의 양위는 이웃 북유럽 국가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될까.

룬드그렌은 “6개월 전에 이러한 질문을 받았다면 ‘절대 그럴 일 없다. (북유럽 3개국) 군주들은 절대 양위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덴마크 여왕의 이번 퇴위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