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는 어떻게 이번 여름 '게이 게임스' 개최지가 되었나

사진 출처, Visit Valencia
- 기자, 에미 로드리게스 플로레스
- 기자, BBC 뉴스
- 게재 시간
- 읽는 시간: 5 분
스페인 발렌시아가 유럽에서 가장 성소수자 친화적인 여행지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올여름 이 도시는 세계 최대 규모의 LGBTQ+ 스포츠 축제인 '게이 게임스'를 개최한다.
지난봄 어느 날 밤, 조정 연습을 하던 우리 팀은 잠시 노를 멈추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9인승 레이싱 보트가 발렌시아 마리나 쪽으로 천천히 떠내려가던 그때, 성소수자로 구성된 우리 팀의 한 선수가 물었다.
"이번 게이 게임스에 출전하는 사람 있어?"
나는 올해 게이 게임스 개최지인 발렌시아에 살고 있는 성소수자 운동선수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게이 게임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동료 선수들로부터 이 대회가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LGBTQ+ 스포츠 행사라는 설명을 듣자마자 나도 참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이 게임스는 전 올림픽 10종경기 선수 톰 와델이 1982년 창설한 국제 스포츠 대회다. 4년마다 개최지를 바꿔 열리며, 사실상 'LGBTQ+ 운동선수들의 올림픽'으로 불린다. 와델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긴 채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 출전했고, 당시 스포츠계에 만연한 성차별과 동성애 혐오를 보며 이런 대회를 구상하게 됐다. 1976년 커밍아웃한 그는 성소수자 선수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경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힘썼다. 그리고 6년 뒤인 198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첫 게이 게임스가 열렸다. 당시 개막식에서는 가수 티나 터너가 축하 공연을 펼쳤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이후 게이 게임스는 암스테르담, 뉴욕, 시드니, 파리처럼 문화적 포용성으로 널리 알려진 도시를 돌며 개최되었다. 그리고 올해는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발렌시아에서 6월 27일부터 7월 4일까지 열린다. 발렌시아는 파에야, 해변, 아르누보 양식과 현대적 디자인이 어우러진 건축물로 유명한 곳. 동시에 유럽에서 성소수자에게 가장 친화적인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나는 2022년 미국을 떠나 스페인으로 이주했다. 이곳을 선택한 큰 이유는 이 나라의 포용적인 문화였다. 스페인은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동성혼 및 차별금지법을 갖춘 국가다. 또한 국제 성소수자 협회(ILGA)에 따르면, 유럽 내 LGBTQ+ 인권 1위 국가로 지난달 스페인이 선정되었다.
마드리드의 추에카, 애정을 담아 '게이샴플레'라 불리는 바르셀로나의 에샴플레 지역 등 스페인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성소수자 친화적 공간들이 많다. 물론 발렌시아는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만큼 눈에 띄는 게이 클럽이 많은 곳은 아니다. 하지만 특유의 여유로운 문화와 "각자의 삶을 존중하자"는 시민 의식 덕분에, 도시의 일상에 광범위한 포용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그래서 발렌시아의 중세풍 좁은 골목길에서는 동성 커플이 입을 맞추거나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상점 쇼윈도에는 무지개 깃발과 스티커가 붙은 곳도 많다. 선택적 누드 비치인 피네도 해변은 성소수자들의 낙원(가족 단위 방문객도 언제나 환영받는다)이다. 약 50년 전 수천 명으로 시작했던 이 도시의 프라이드 페스티벌(퀴어 축제)은 이제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한다. 성소수자 전문 숙박 예약 사이트 '미스터비앤비'에 따르면, 올해 6월 20일에 열리는 프라이드 페스티벌를 앞두고 숙소 예약 건수가 작년 대비 58% 늘었다.

사진 출처, Alamy
올 여름에는 프라이드 축제와 게이 게임스가 일주일 간격으로 연이어 개최된다. 발렌시아는 이에 맞춰 특유의 포용적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발렌시아 관광청의 다비드 고메스에 따르면, 이번 게이 게임스에는 75개국에서 9000명이 넘는 선수들이 참가해 39개 종목에서 실력을 겨룬다. 관람객은 약 4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는 도시 전역에서 펼쳐지지만, 46개의 모든 경기장이 스페인 최대 규모의 도심 공원 중 하나인 '하르딘 델 투리아'에 마련된 게이 게임스 빌리지에서 자전거, 지하철, 버스, 택시로 금방 이동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위치에 있다.
게이 게임스 코디네이터인 데보라 지아우이는 200km가 넘는 발렌시아의 자전거 도로는 대부분 평탄한 지형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며 "가장 먼 경기장도 10분이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개막식이 열리는 6월 27일에는 하르딘 델 투리아 공원을 통과하는 일반인 참여형 '3K 국제 레인보우 메모리얼 런' 대회도 개최된다.

사진 출처, Alamy
발렌시아의 LGBTQ+ 문화 살펴보기
게이 게임스 기간 동안 발렌시아 전역은 모든 방문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다양한 행사로 채워진다. 6월 27일 개막식에는 선수단 행진과 성화 점화, 화려한 라이브 공연이 펼쳐진다. 이곳의 유서 깊은 시립 박물관은 대회 기간 내내 "현대 미술의 정체성" 전시를 열어, 지역 출신 LGBTQ+ 화가 및 조각가 8인의 작품을 선보인다. 6월 30일에는 수백 명이 한 목소리로 유명 팝송을 부르는 합창 페스티벌이 축제를 찾은 모든 이들의 귀를 사로잡을 예정이다. 수상 종목의 대미를 장식할 파티인 '핑크 플라밍고'는 7월 3일에 개최되며, 아름다운 수중 발레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 대회뿐만 아니라, 발렌시아의 LGBTQ+ 문화는 꾸준히 확장해왔다. 발렌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성소수자 친화 구역을 꼽으라면 단연 구시가지의 '바리오 델 카르멘(카르멘 지구)'일 것이다. 1975년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사망하고 4년 뒤 동성애가 합법화되자, 예술가들과 성소수자들이 낙후된 이 동네로 이주해왔다. 이후 펑크 문화가 유행하며 '라디오 시티'나 '피터 록 클럽' 같은 클럽에 하위문화를 즐기는 인파가 모여들었고, 이 지역은 성소수자들의 안식처로 떠올랐다.
차가 다니지 않는 카르멘 지구의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성소수자가 운영하거나 성소수자 친화적인 가게들을 곳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최근 문을 연 '액셀 호텔 발렌시아'는 이성애자도 환영하는 스페인의 유명 호텔 체인으로, 여행의 거점으로 삼기에 제격이다. 인근에 있는 '라 카르멘 VLC', '트라페치오 카페', '엘 카페틴' 같은 곳들은 편안한 분위기의 게이 바로,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술 한잔을 즐길 수 있다. 조금 더 활기찬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바로크 양식의 유서 깊은 건물에 자리한 '카페 데 라스 오라스'를 추천한다. 발렌시아의 상징적 칵테일인 아구아 데 발렌시아가 여행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시발점이 바로 이곳이다. 체격이 큰 사람을 선호하는 성소수자들의 아지트인 '부부' 같은 바도 모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카르멘 지구 남쪽에는 발렌시아의 또 다른 유명 성소수자 친화 구역인 루사파가 있다. 역사적으로 아랍계 이민자들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최근 몇 년 사이에 LGBTQ+가 운영하는 상점과 레스토랑으로 채워지고 있다. 성소수자 여행자이라면 알록달록한 아르누보 및 아르데코 양식의 건물들을 지나 수에카 거리와 데니아 거리가 만나는 교차로를 방문할 만하다. 현지인들이 애정을 담아 "칸토 데 레스 마리케스(성소수자들의 모퉁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프랑코 정권 시절 동성애가 법으로 금지되었을 때, 성소수자들이 은밀하게 만남을 갖거나 데이트 상대를 찾던 역사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Alamy
루사파에는 레스토랑과 카페마다 야외 테이블이 즐비하고, '코믹 카페'에 걸린 무지개 깃발이 지나가는 이들을 향해 자랑스럽게 나부낀다. 코믹 카페에서 몇 골목 더 내려가면 성소수자가 운영하는 편안한 분위기의 바 '라 보바 이 엘 가토 란시오'를 만날 수 있다. 한층 더 활기찬 분위기와 젊은 에너지를 느끼고 싶다면 '템플로'나 레즈비언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은 '라스베이거스'를 추천한다. 이 모든 명소는 게이 게임스 빌리지에서 자전거로 7분, 버스로는 20분이면 갈 수 있을 만큼 가깝다.
코믹 카페 사장인 카를로스 솔레르는 "우리 카페는 이곳 루사파에서 다른 가게들과 평화롭게 어우러지고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해 왔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코믹 카페는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위한 유일한 거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몇 년새 열린 마음을 가진 다른 바들이 주변에 자리를 잡으면서, 루사파는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언제나 안전하고 자유롭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솔레르에게 발렌시아가 게이 게임스를 개최하기에 완벽한 도시인 이유를 물었다. 그는 "발렌시아는 아름다운 지중해와 좋은 기후를 갖고 있고, 스포츠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다"며 "게다가 이곳 사람들이 굉장히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발렌시아 관광청의 고메스는 "발렌시아 차원에서 게이 게임스는 단순히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 이상의 큰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는 다양성이 일상이 되는 곳, 즉 열려 있고 포용적이며 누구에게나 친절한 여행지라는 발렌시아의 정체성을 한층 확고히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모두에게 게이 게임스는 치열한 경쟁의 장인 동시에, 끈끈한 동료애를 나누는 축제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Visit Valencia
드래곤 보트 종목에 출전하는 네레아 포르카델은 "안전하고 즐거우면서도 치열하게 경쟁하는 무대를 기대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모두가 하나가 되는 거대한 연대의 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나는 타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이주하고 LGBTQ+ 조정 선수들의 커뮤니티를 만나게 되면서, 퀴어 운동선수라는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누구든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발렌시아의 포용적 분위기 덕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오늘날 이러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앞장서 싸워준 와델 같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덕에 그가 커밍아웃을 하고 게이 게임스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은 지 5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무런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없이 온전한 나로서 당당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